[단독] "행사 도우미 2시간에 3만원" 갔더니…수상한 알바

입력 2024-03-26 07:40   수정 2024-03-26 17:27


“제발 키 순서대로 서 주세요. 사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이 나와야 합니다.”
“현수막 내용 잘 보이게 양옆에서 빳빳하게 당겨주세요.”

지난 19일 오후 1시 반 서울 남산예장공원 앞. 시민환경단체 전국환경단체협의회의 한재욱 대표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행사 참가자 50명가량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오와 열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생태환경 파괴 학습권 침해 남산 곤돌라 설치 반대’‘짬짜미 의혹 수의계약 웬말이냐’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렸다.

단체의 집회 활동은 사흘 뒤인 22일 서울시청 신청사 동쪽 문 앞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도 한 대표는 “목적이 뭐라고 했나, 많은 사람이 온 걸로 보여야 하는 거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줄을 정리했다.

각 행사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 곤돌라 건설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다. 전국환경단체협의회 녹색청년봉사단, 서울학부모연대, 한국환경단체장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남산숲지키기범시민연대’가 주최했다.

시는 명동역 인근 남산예장공원에서 남산 꼭대기까지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남산 곤돌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민간회사인 남산 케이블카가 이미 관광객들을 수송하는 상황에서 굳이 또 다른 공공 이동수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남산 곤돌라가 남산 주변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근 리라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경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운 이 집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일당 3만원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본지 기자 두 명은 온라인 채용 사이트 ‘알바천국’에 행사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구인 글을 보고 19일과 22일 집회에 참여했다. 업무 내용은 기자회견 행사 참석 도우미로 시급은 1만5000원이었다.



집회 참가 방법은 간단했다. 이름 성별 나이 거주지를 적어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면 하루 안에 합격 여부를 알리는 답장이 왔다. 집회가 끝나는 대로 대표에게 은행 계좌번호를 공유하면 돈이 바로 이체됐다.

현장에서 만난 A씨(50)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소일거리 삼아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며 ”꾸준히 활동한 덕분에 최근 일당이 5000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참가 인원 중 남산숲지키기범시민연대 회원 6명, 서울학부모연대 1명, 그리고 한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온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집회 방식은 모인 사람들이 ‘환경 보호의 의지를 알리는’ 것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집회 사전 안내 문자에는 ‘몸 노출이 안되면 참가 의미가 없다’는 말이 포함됐다. 집합한 날에는 한 대표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70분 가량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구성원들을 앞에 두고 일장 연설을 펼치는 식이었다. 한 대표는 “처음 온 분들이 많으니 남산 곤돌라 사업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자신의 논리를 설파했다. 취지에 동감해 참가하는 이들이 많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엑셀 등 조금이라도 스펙을 갖춰야 한다” “시진핑처럼 외칠 테니 따라하라”며 일장 훈시를 하거나 개인사를 늘어놓는 데 사용했다.

단체는 당일 모인 인원을 대상으로 ‘환경을 지키는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활동 신청 후 받은 안내 문자에도 ‘환경지키미 봉사활동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문구를 적어 보냈다. 또 한 대표는 집회 당일 “봉사활동 인증서도 발급해줄 수 있다” “2시간 활동한 것으로 인증된다”라고 말하며 ‘봉사활동’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활동서를 발급해달라는 요청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단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시청, 서울시교육청, 리라초등학교, 남산예장공원에서 1인 시위와 단체 집회를 병행하고 있다. 매달 800만원, 지난 6개월 동안 4800만원가량을 집회 참가자 인건비로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론 형성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개인이 신념만으로 지출하기에는 다소 큰 금액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한 대표는 “직원 7명이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사업 수익과 연 10만원 후원금을 모아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국경제신문에 해명했다.
남산 케이블카 vs 남산 곤돌라

현재 남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남산케이블카’는 서울시나 시 산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회사 한국삭도공업주식회사(한국삭도)가 소유하고 있다.

한국삭도는 1962년부터 남산 케이블카를 독점 운영하고 있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당시 대한제분 사장이었던 고 한석진씨가 허가를 받아 운영을 시작했다. 민간 기업에 사업권을 내줄 당시 사업 종료 시한을 정해 두지 않아 3대 째 가업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설립자 고(故) 한석진 씨의 아들인 한광수 대표와 이강운 부사장 일가가 회사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한광수·이정학씨 부부는 미국 국적자로 알려졌다.

독보적인 사업자인 만큼 수익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한국삭도의 2019년 매출은 136억566만원, 영업이익은 51억868만원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2020년도 매출은 49억7091만원, 영업이익은 4억4228만원이다. 이후 별도의 감사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이 민간 기업이 자연 자원을 활용해 쌓은 수익을 공공으로 환수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2019년 궤도운송법이 개정됐지만 케이블카 등 궤도 시설 관련 사업 허가·승인 절차를 규정할 뿐 사업 유효기간은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기업은 해마다 3000만원~4000만원 수준의 국유지 사용료를 정부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카 시설 사업터(5370㎡) 중 40%가량인 2180㎡가 산림청 관리 국유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곤돌라 사업을 통해 남산 정상부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수익을 공공을 위한 환경 보호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의 곤돌라 사업은 앞서 오세훈 시장 첫 재임 시절과 고 박원순 전 시장 때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의 반대와 문화재 문제 등으로 계획이 무산됐다.

이후 2021년 8월 관광버스의 정상진입이 제한되면서 노약자나 장애인이 남산 정상부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커졌고, 이동 수요가 대폭 늘어 사업 추진의 필요성이 다시 커졌단 것이 시 측 설명이다. 또 시 관계자는 “공공 곤돌라를 운영하면 환수한 수익을 재원삼아 공공을 위한 남산 환경 보호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능적인 면에서 곤돌라와 케이블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곤돌라는 남산예장공원에서 남산 정상부까지의 800m 길이를 오갈 예정이다. 10인승짜리 25개 객실로 시간당 1600~2000명을 수송할 계획이다.

케이블카는 정원 48명짜리 객실 두 대로 승객을 실어 나른다. 회현동 승강장에서 남산 꼭대기에 있는 예장동 승강장까지 605m 거리를 평균 초속 3.2m로 운행한다. 케이블카 요금은 대인왕복 1만5000원(편도 1만2000원)이다. 곤돌라 이용 요금은 이보다 낮게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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